나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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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자가 더 강한 존재다. 그것만이 이 땅의 유일한 진리.
다부족 연합국가
이 드넓은 대륙의 아이들은 저마다 다른 얼굴과 다른 발톱, 다른 울음소리를 지니고 태어납니다. 어떤 이는 인간의 형상을 닮았고, 어떤 이는 짐승의 뿔과 이빨, 깃털과 꼬리를 지녔습니다. 하지만 나빌에서 중요한 것은 외형이 아닙니다.
이곳에서 삶을 결정하는 것은 단 하나, 끝없이 밀려드는 위협 속에서 얼마나 오래 살아남고, 얼마나 강하게 적응해왔는가입니다.
붉은 여왕이 '진화'를 투사한 이후, 나빌은 더 이상 평범한 대륙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수많은 부족과 종족, 문화가 뒤섞여 살아가는 이 광대한 땅은 거대한 실험장이자 전장, 그리고 피와 생존의 기억 위에 세워진 연합국가가 되었습니다. 왕은 없고, 단 하나의 절대 권력도 없습니다. 이곳을 움직이는 것은 각 부족의 오랜 전통과 자존심, 그리고 멸망을 피하기 위해 손을 맞잡아야 한다는 냉혹한 현실뿐입니다.
진화가 내려앉은 대륙
나빌은 본래 인간과 여러 부족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던 땅이었습니다.
New Age 이후 변해버린 기후와 붕괴한 문명 속에서도 부족들은 싸우고, 교류하고, 공존하며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만룡의 어미 '게르기아'가 창조한 첫 번째 아이, 훗날 '붉은 여왕'이라 불리게 될 용이 이 땅에 둥지를 틀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그녀는 칼리폴리스에서 탈취한 코덱스, '종의 기원'과 자신의 권능을 이용해 나빌 전역에 '진화의 개념'을 투사했습니다. 그 결과 이 땅에는 인간과 짐승의 특징이 뒤섞인 존재들, 수인과 아인종들이 태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변이가 아니었습니다. 육신과 감각, 생존 방식 그 자체가 다시 설계되는 대격변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처음에 이 변화를 두려워했습니다. 인간은 수인을 불쾌하게 여겼고, 수인은 인간의 두려움과 적의를 기억했습니다. 부족은 자연스럽게 갈라졌고, 서로 다른 존재들은 생존을 위해 영역을 나누고 싸워야 했습니다.
하지만 붉은 여왕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용을 닮은, 그러나 결코 용이 될 수 없는 수많은 아룡족들을 창조했습니다. 이 완성된 포식자들로 하여금 나빌의 주민들을 사냥하게 만든 것입니다. 그리고 그 피비린내 나는 반복 속에서, 이 땅의 생명체들이 더 강해지고 더 영악해지기를 기다렸습니다.
- "나빌의 아이들은 언젠가, 잘린 내 목과 날개를 짓밟으며 축제를 벌이겠지. 어서… 그 날이 오길 바라."
- — 붉은 여왕
자연 속에 구축된 고도 문명
외부의 시선에서 나빌은 종종 '야생의 땅'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 말은 이 땅을 절반밖에 이해하지 못한 이들의 판단에 불과합니다. 나빌은 자연과 본능을 중시하지만, 결코 미개하거나 원시적인 곳이 아닙니다. 이들은 세계 전역에 보편화된 기술과 문명을 알고 있으며, 그것을 필요에 따라 취사선택할 줄 압니다. 다만 그들에게 문명의 가치는 편의나 사치가 아니라, 생존과 부족의 존속에 도움이 되는가로 판단될 뿐입니다.
그래서 나빌의 도시는 자연 속에 녹아 있으면서도 분명 문명적입니다.
초원과 강, 사막과 고산, 동토와 바다가 각 부족의 색을 입고 있으며, 부족마다 건축 양식과 무기, 의식과 삶의 방식이 다르게 발전했습니다. 어떤 부족은 광대한 평야 위에 대도시를 세웠고, 어떤 부족은 강을 따라 단단한 전사의 도시를 이루었으며, 어떤 부족은 별을 읽는 피라미드 도시를 하늘 아래 올렸습니다.
나빌은 하나의 국가이면서, 동시에 수많은 국가가 겹쳐 있는 대륙이기도 합니다.
왕 없는 연합
아룡족의 침공이 점점 거세지자, 나빌의 부족들은 결국 깨달았습니다. 각자의 전통과 긍지만으로는 붉은 여왕이 만든 재앙을 막아낼 수 없다는 사실을. 대륙의 절반이 짓밟히고, 좁아진 영토 안에서 부족들끼리 서로를 해치기 시작했을 때, 볼몬트 부족의 지도자들은 처음으로 대륙의 부족장들을 한자리에 불러모았습니다.
그리하여 탄생한 것이 나빌이라는 이름의 다부족 연합체입니다. 나빌에는 공식적인 왕이 없습니다. 각 부족은 자신의 영토와 문화를 지키는 자치령이며, 대륙 전체의 운명에 관한 문제만이 부족장들의 협의로 결정됩니다. 그 탓에 갈등과 지연, 자존심 싸움이 끊이지 않지만, 동시에 어느 한 부족도 다른 부족을 완전히 지배할 수 없다는 점이 이 연합을 특별하게 만듭니다.
아에로른이 결국 하나의 중심 부족 아래 질서를 갖춘 문명이라면, 나빌은 그 반대입니다. 이곳은 완전히 하나가 되지 못한 채, 멸망하지 않기 위해 함께 선 연합체입니다. 그래서 이들의 결속은 이상이나 신념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그것은 같은 재앙을 마주하고 있다는, 아주 거칠고 현실적인 연대감에서 비롯됩니다.
세 개의 심장
나빌은 십여 개가 넘는 부족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 중심에는 세 개의 거대한 세력이 있습니다.
첫째는 볼몬트 부족, 곧 '땅의 아이들'입니다.
나빌에서 가장 크고 영향력 있는 부족이자, 연합의 실질적인 중심축입니다. 넓은 평야와 풍부한 경작지를 바탕으로 자원을 축적했고, 강인한 전사뿐 아니라 전략가와 주술사까지 체계적으로 길러냅니다. 이들은 단순히 강한 부족이 아니라, 넓은 땅 전체를 보고 오래 생각할 줄 아는 자들입니다.
외부 세력과의 교역을 주도하는 것도 거의 볼몬트뿐이며, 다른 부족들이 감정으로 반응할 때 이들은 늘 대륙 전체의 손익을 계산합니다.
둘째는 나슈가란카 부족, '강의 아이들'입니다.
거친 강물처럼 단단하고 직선적인 전사들의 부족. 이들은 마법과 기계를 편법이라 여기며, 오직 육체와 무력, 리더십으로 삶을 증명하려 합니다. 가장 가혹한 훈련을 견디고, 가장 빠르게 전장에 투입되며, 약소 부족들이 위기에 처했을 때 가장 먼저 병력을 보내는 이들도 이들입니다.
나슈가란카는 호전적이지만 잔인하지 않습니다. 이들에게 부족은 곧 가족이며, 함께 살아남는 것은 명예 이전의 의무입니다.
셋째는 헤규타리안 부족, '별의 아이들'입니다.
황금빛 피라미드 도시와 천문 신앙으로 유명한 이들은 나빌에서 가장 종교적이며, 동시에 가장 지적인 세력입니다. New Age 이후 이지러져버린 별의 운행을 읽고 미래를 예견하며, 그것을 바탕으로 마법과 농경, 전쟁의 시기를 판단합니다. 겉보기에 신비주의자처럼 보이지만, 이들의 천문 지식은 결코 미신의 수준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그들은 별을 믿지만, 그 믿음을 누구보다도 정교한 계산과 해석 위에 세우고 있습니다.
이 세 부족은 서로 다릅니다.
하나는 대지를 읽고, 하나는 몸을 단련하며, 하나는 하늘을 해독합니다. 그러나 바로 그 차이 덕분에 나빌은 하나의 방식만으로 무너지지 않고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습니다.
붉은 여왕
나빌의 비극은, 이 모든 재앙의 근원이 너무도 분명하다는 데 있습니다.
붉은 여왕은 대륙 최남단의 얼어붙은 땅에서 지금도 이 모든 변화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녀가 만든 아룡족은 단순한 괴물이 아니라, 나빌 전체를 단련하기 위해 던져진 시험지입니다. 더 빠르고, 더 영리하고, 더 창의적으로 살아남을 것을 요구하는 잔혹한 문제들입니다.
일부 어리석은 자들이 그녀를 신처럼 떠받들지만, 붉은 여왕은 그러한 기생적 태도를 경멸합니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무릎 꿇는 신도들이 아니라, 맞서 싸우고 적응하며 끝내 자신을 넘어설 존재들입니다. 그녀가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 왜 이런 일을 벌이는지 아직은 그 속내를 누구도 알지 못합니다.
자연과 주술, 그리고 불편한 문명
나빌 사람들은 자연과 정령, 징조와 피의 기억 속에서 살아갑니다.
하지만 그것이 기술을 전혀 거부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특히 볼몬트 부족을 중심으로 외부와의 무역이 이루어지면서, 나빌은 제한적이나마 외부 문명의 도구들을 받아들여 왔습니다. 발루람의 희귀 원료, '라비스타'가 흘러들어왔고, 칼리폴리스는 아룡족에 대한 데이터를 수집한다는 명분 아래 오토마타 용병들을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주민들은 기계와 휴머노이드에 본능적인 불쾌감을 느낍니다.
살아 있는 살과 피, 땀과 상처를 통해 진화하는 이들의 가치관 속에서, 금속 몸체와 인공 정신은 쉽게 신뢰할 수 없는 이질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나빌은 문명을 모르지 않지만, 문명이 곧 존경의 대상이 되는 곳도 아닙니다. 이 땅에서 존중받는 것은 늘, 결국 스스로 살아남아 본 경험뿐입니다.
드리우는 긴장감
New Age 510년, 나빌은 다시 기묘한 긴장 속에 놓여 있습니다.
붉은 여왕의 창조물들은 여전히 남쪽에서 기회를 엿보고 있고, 최근에는 중심부 산맥에 새로운 아룡족 생산자가 숨어들어 둥지를 틀려 했다는 사실까지 드러났습니다. 다행히 나슈가란카 부족의 정찰자 스칼리오네가 이를 발견하고 간신히 막아냈지만, 이는 붉은 여왕의 손길이 다시금 모든 곳으로 번져나가고 있다는 신호와도 같은 사건이었습니다.
또한 헤규타리안 부족의 제사장 '다몬 나유'가 하늘에 나타난 새로운 별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아란 고원으로 향한 틈을 타, 그림자 속으로 숨었던 붉은 여왕을 섬기는 자들이 다시금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머지않아 모두가 알게 될 것입니다. 누가 가장 강한 존재로 남겨질지 말이죠.